
케나다 온타리오 주에서 태어난 밥 영은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합니다. 대학 졸업 이후 컴퓨터 렌탈사업 등 여러 형태의 사업을 시도합니다. 그 가운데에서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도가 바로 1993년 설립한 ACC Corp 입니다. ACC Corp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카달로그를 판매했습니다. 당시 인터넷 속도, 특히 미국의 인터넷 속도는 너무 느려서 리눅스같은 덩치가 큰 소프트웨어를 내려받기 힘들었습니다. 밥 영은 유닉스 관련 잡지, 공개 소프트웨어 CD등을 우편 주문 방식으로 판매했습니다.
이때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자신의 배포판을 만들던 마크 유잉(Marc Ewing)을 만납니다. (마크 유잉은 이미 소개한 적이 있죠.) 밥 영은 마크의 기술력에 자신이 가진 유통 감각이 더해지면 거대한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직감했습니다. 1995년 둘은 레드햇소프트웨어를 공동으로 창업합니다. 레드햇 리눅스를 만든 후 '코드는 무료지만, 안정성과 책임은 유료다'라는 논리로 대기업을 설득하였으며, 지금까지도 레드햇은 서비스 구독 사업 모델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의 통찰은 소프트웨어 제품의 시대는 저물고, 서비스 형태로 판매하는 시대가 다가올 것을 예견했습니다. 그는 '일반인도 리눅스를 쉽게 사용할 수 있어야 비즈니스로 성공한다'고 믿었고, 리눅스가 엔지니어들의 전유물이 아닌 비즈니스 솔루션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방향성을 명확히 했습니다.
그는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오픈소스를 어떻게 돈을 주고 구매하냐는 질문에 케첩을 예로 들었다고 합니다.
누구나 직접 토마토를 사다가 집에서 케첩을 만들 수 있지만, 사람들은 하인즈(Heinz) 케첩을 구매합니다. 하인즈가 제공하는 품질의 일관성과 편리함, 그리고 신뢰를 믿기 때문이죠.
이 논리는 오픈소스 비즈니스 모델의 정석으로 받아들여졌고, 지금도 수많은 오픈소스 기업들이 수익을 창출하는 근거가 되고 있습니다. 그의 브랜딩과 사업모델 덕분에 유닉스 일변도였던 기업 시장에서 리눅스가 신뢰할 수 있는 대안 운영체제로 자리잡게 됩니다.
1999년 레드햇이 나스닥에 상장되었을 때 그는 CEO로서 IPO 주식 매수권을 오픈소스 개발자들에게 부여합니다. 이는 리눅스 공동체가 없었다면 레드햇도 존재할 수 없다는 그의 철학을 실천으로 옮긴 한 사례로 소개됩니다.
밥 영은 레드햇 CEO에서 내려온 후 레드햇에서 배운 '중앙집중된 권력을 사용자에게 되돌려주는 법'을 출판업계에 그대로 이식하여, 주문형 출판 시스템 업체인 루루닷컴을 설립합니다. 책이 팔리면 인쇄를 하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재고가 없었습니다. 또한 작가에게 수익 80%를 공유하는 구조를 운영하였습니다.
우리는 시장을 독점하려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자신의 컴퓨팅 환경을 직접 제어할 수 있는 자유를 위해 싸운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을 내 주변에 모으는 방법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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