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글로 문서를 작성할 수 있는 프로그램하면 한글과컴퓨터사의 아래아 한글을 떠올릴텐데요. 사실 최초의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아래아한글이 아닌 한글프로세스3(이후 사임당 워드)입니다. 무려 애플컴퓨터에서 실행되던 워드프로세서인데요. 이 워드 프로세서를 만든 분이 바로 강태진님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캐나다로 이민간 소년 강태진은 토론토 대학을 마치고 1982년 한국에서 3개월 머무르게 됩니다. 한국과학재단에서 운영한, 교포 학생을 우리나라 회사의 인턴으로 초대하는 프로그램에 선발됩니다. 강태진님은 3달동안 한국에 머무르면서 한국의 현실을 알게 됩니다. 당시 애플 컴퓨터(카피컴퓨터 포함)가 널리 사용되고 있었지만 애플 운영체제에서 동작하는 한글 소프트웨어는 하나도 없었죠. 인턴십 프로그램으로 함께 한국을 방문했던 동창과 한글 워드프로세서를 만들기로 의기투합하고, 1983년 한글전용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합니다.
강태진님은 원래 박사 과정을 준비중이었다고 합니다. (자네 대학원에 관심있나?) 토론토대 박사 과정을 준비하는 중 미국방부 전산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하여 1983년 휴학하고 한컴퓨터인스티튜드를 설립합니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외부적 상황때문에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이때 운명처럼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한국인 부자였던 TeleVideo사의 필립황으로부터 연락을 받습니다. 필립은 미니컴퓨터를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싶었는데, 그를 만난 강태진은 학자 대신 사업가의 꿈을 꾸게 됩니다.
88년 외교관이었던 장인의 권유로 다시 한국을 찾았고, IBM용 첫 한글워드 프로세스인 한글 2000(이후 사임당으로 이름을 바꿉니다.) 개발하여 판매합니다. 한컴퓨터연구소를 한국에 설립한 다음 처음으로 채용한 아르바이트생이 바로 이찬진 한글과 컴퓨터 대표입니다. 이찬진님은 당시 군미필이었는데, 제대후 한글과컴퓨터를 설립했고,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임당 워드가 기억에 남습니다. 가변 크기 글꼴을 지원하는 최초의 그래픽워드프로세서였습니다. 처음에는 비트맵 글꼴이라 글씨 크기를 키우면 엄청난 계단이 생겼던 기억이 있네요. 잉크젯 프린터기인 HP Deskjet 500 시리즈를 사면 사임당을 번들링해주었습니다.

강태진님은 1994년 한컴의 경쟁사였던 한메컴퓨터, 휴먼컴퓨터, 문방사우, 21세기 워드프로세스(이스트소프트)를 합쳐 나라소프트를 설립하고 '파피루스'라는 윈도우용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였지만,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후 나라컴퓨터는 한컴에 인수됩니다.
이후 한컴에서 독립한 강태진은 자바 기반의 오피스 소프트웨어인 씽크프리를 설립합니다. 씽크프리가 투자받는 과정에서 자바를 만든 제임스고슬링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합니다. 씽크프리는 혁신적이었지만, 미국의 인프라 미비로 성공하지 못하고(초고속 인터넷은 대한민국, 인프라강국), 다시 한번 한컴에 인수됩니다. 두번째 한컴으로의 인수합병이죠. 씽크프리는 한때 마이크로소프트 CEO 스티브 발머가 리눅스 다음의 잠재 위협으로 지목할 정도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강태진님은 KT, 삼성 등에서 여러 서비스 개발을 진두지휘합니다. 강태진님은 <내사랑 내사업 내방식대로>와 < 세상은 꿈꾸는 자들의 것이다>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목표가 돈이였던 적은 한번도 없다. 돈을 엄청나게 벌기위해 하는게 아니라, 재미있어 하는 거다. 하지만 재미만 가지고 하면 쉽게 지치는 것도 사실이다.
재미만 가지고 하면 흔들리기 쉬운데, 내가 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 단순 재미가 아니라, 내가 속한 사회에, 세상에 뭔가 기여한다고 생각하면 장거리를 갈 수 있다.
세계 시장과 세계 유저들을 대상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인터넷이 발달돼 장소가 중요하지 않게 됐다. 언제나 시장은 세계를 타깃으로 해야 한다. 또 남들이 다 하는것, 이미 트렌드가 된 것, 이런걸 쫒으면 안된다. 그러면 너무 늦다. 너무 앞서가도 안된다. 반발자국만 빨라야 한다.
의도적으로는 못한다. 우연히 했는데 반발자국 이였다, 이러려면 언제나 남들보다 트렌드를 빨리 캐치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기술은 한국만 보면 안된다.
아직 우리 소프트웨어 산업은 대부분 모방단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처럼 철저한 모방을 거쳐 창조의 단계로 들어서려면 소프트웨어 산업의 저변확대와 특히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1993년)
내사랑 내사업 내방식대로 | 강태진 - 교보문고
내사랑 내사업 내방식대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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