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나이가 그린 공병우 박사님. 원본: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4308

 

1907년 평안북도에서 태어난 공병우 박사님의 본업은 안과 의사입니다. 하지만 IT 분야 종사자들에겐 한글 연구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글 입력에 많은 관심을 가져 세벌식 자판을 개발합니다.  컴퓨터 이전에는 한글 타자기를 개발합니다. 어찌보면 바뀌어가는 현대 업무 환경에 맞게 한글을 사용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들어 주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우리나라에 컴퓨터가 보급되기 시작했을 무렵 한글 문화원을 설립하여 젊은 개발자들이 모일 수 있는 터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아래아 한글을 만든 이찬진님, 정내권님. 나모 웹 에디터를 만든 박흥호님 등. 젊은 개발자들이 컴퓨터에서 한글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글문화원에서 펼칠 수 있었습니다.

 

한글 전산화 뿐만 아니라 시각 장애인분들의 재활을 돕는 일에도 앞장서셨는데요. '맹인부흥원'을 설립하여 시각장애인이 안마 이외에도 경제 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1995년 돌아가셨을 때 정부에서는 공병우 박사님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하였습니다. 현재는 차남 공영태님이 선친을 이어 종로 공안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글걸이님 블로그에 관련 글이 많다. (출처: https://pat.im/981)

 

아래는 공병우 박사님의 자서전 <나는 내식대로 살아왔다>의 몇 구절입니다.


나의 죽음을 세상에 알리지 말고, 장례식도 치르지 말라. 쓸 만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남은 시신도 해부용으로 기증하라. 죽어서 땅 한 평을 차지하느니 차라리 그 자리에서 콩을 심는 게 낫다. 유산은 맹인 복지를 위해 써라. (공병우 박사님 유언)

 

 

나는 한글 원리와 일치하는 세벌식 타자기 개발을 목표로 삼고 지금까지 연구하던 두벌식 자판을 미련없이 포기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서는 기현상이 생겼다. 내가 이미 40여 년 전에 만들었다가 기계 공학적인 무리가 많은 것을 깨닫고 내버린 바로 그 두벌식 시스템을 요즘에 와서 정부 표준판이라고 정해 놓고 있으니, 정말 한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생명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안전을 위해 예방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문명인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기의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사람이 남의 생명도 소중히 다를 줄 아는 법이다.

 

나는 지금도 매일 공부를 한다. 교육계에서는 평생 교육이란 말이 있는 모양인데 나는 바로 그 평생 교육을 목표로 살고 있는 사람이다. 실력 있는 사람이 정당한 대접을 받고 사는 사회가 참다운 민주 사회라고 생각한다. 

 

 


https://digital.khs.go.kr/heri/heriDetail.do?ctptUid=13918099549842000069&ctptNo=44111055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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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유산 디지털 서비스,대국민 공개 통한 과거/현재/미래 공존의 가치를 디지털로 담다. 역사의 숨결을 지키고 미래의 가치를 더합니다. 국가유산 가치 창출을 위한 데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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