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로운 종신 독재자(Benevolent Dictator for Life).. IT업계에서  이런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몇몇 분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패트릭 볼커딩도 그중 한 분입니다. 그는 1993년 리눅스 슬랙웨어 배포판을 만들고, 지금까지 계속 개발을 이끌며, 종속성 문제 해결 및 슬랙웨어를 유닉스와 비슷하계 유지 보수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이죠... 슬랙웨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리눅스 배포판이기도 합니다. 

패트릭 볼커딩은 66년생으로 버지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미 해군 소속 치과의사였지만 어린 시절을 노스 다코다에서 보냈습니다. 7살이던 73년도에 노스다코다 주립대 컴퓨터학과를 견학갔다가 메인프레임을 만나게 되죠.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폭발했지만, 가정형편때문에 컴퓨터를 장만하지 못했던 패트릭은 열심히 전자공학을 공부합니다. 릴레이 회로를 직접 만들었답니다. 그러다가 애플2, TRS-80 같은 개인용 컴퓨터가 출시되었고, 컴퓨터 가게를 하도 자주 가서 단골이 된 패트릭은 BASIC을 독학한 후 가게에서 쓸만한 간단한 데모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그 덕분에 가게에 떳떳하게 무제한 입장 가능!! 

그의 첫 컴퓨터는 애플2+였다고 합니다. 이후 90년까지 애플컴퓨터만 사용했는데, 92년 운명적으로 리눅스를 만납니다. 볼커딩은 85년 보스턴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 학위 취득후 무어헤드 주립대(현 미네소타 주립대)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볼커딩은 인공지능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LISP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볼커딩은 프로젝트에 사용할 저렴한 LISP 인터프리터를 찾다가 초기 리눅스 배포판중 하나인 SLS를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SLS는 잘못된 파일권한, 불안정한 네트워크 구성으로 크래시가 자주 발생했는데, 볼커딩은 소스코드를 재 컴파일하면서 안정성을 높여가는 작업을 진행하죠.  교수님이 "새로운 컴퓨터에 설치 디스크를 수정해서 이런 수정 사항들이 바로 적용되도록 할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던진 질문이 슬랙웨어의 시작이었습니다.(교수님 왜 그러셨어요? 차라리 대학원 진학하라고 하시지. 아 이미 대학원생이구나. )

1993년 SLS의 품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직접 리눅스 배포판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초기에는 소스코드에서 소프트웨어를 수동으로 패치킹하는 방식의 사용자 정의 설치 스크립트를 작성했고, 유즈넷 comp.os.linux 그룹의 피드백을 받아 시스템을 개선해 나갑니다. 1.0 이  AT&T에 처음 배포된 후 높은 인기를 누리며 초기 사용자를 끌어 모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슬랙웨어를 유지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슬랙웨어는 15.1이 최신 버전입니다. :)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참여하고, 공유하는 과정.. 리눅스의 철학과 딱 맞는 것 같아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1992년, 핀란드에서 누군가가 UNIX 클론을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16MHz 386/sx에서 OS/2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괜찮은 운영체제였지만 제가 정말로 원했던 건 UNIX 계열 운영체제였습니다.
사용자의 의도를 미리 짐작하려 들수록 오히려 장벽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저는 당장 눈앞의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 목표들이 달성되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집니다. 슬랙웨어 개발은 ​​계획적인 설계라기보다는 진화의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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