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부자들 중에서 대부분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오늘 만나볼 분은 이른바 흙수저에서 자수성가한 개발자 출신 창업가입니다. 스마일게이트를 만들고 세계적인 게임 제작사로 성장시킨 권혁빈 님입니다. 현재 스마일게이트 최고 비전 책임자(CVO)입니다. 또한 포브스 한국 부호 명단에 4~5위를 오르내리고 있는, 이른바 흑수저 출신의 성공 신화를 쓴 분입니다. 게임업계는 젊은 편이지만 여전히  8x 학번이 경영자인 경우가 많은데, 이번에 소개하는 스마일게이트는 9x 학번의 권혁빈님이 이끄는 젊은 기업집단입니다.

전주에서 나고 자란 권혁빈 님은 서강대 전자공학과 92학번로 진학합니다. 어린 시절부터의 꿈이었던 로봇을 만들고 싶어서 전자공학과를 선택합니다. 하지만 전자공학과는 그의 꿈이었던 로봇과는 거리가 먼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권혁빈 님은 '뭔가에 미쳐서 제대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의 관심을 이끈 것이 바로 컴퓨터였죠. 권혁빈님은 서강대 컴퓨터 동아리에 적극 활동하면서 컴퓨터공학을 부전공으로 공부합니다. 당시 서강대는 신부님들의 노력으로 국내에서 인터넷 도입이 빠른 대학교 중 하나였습니다.

그에게 또다른 성장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바로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입니다.  이제는 사라졌지만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은 소프트웨어 개발을 사랑하는 대학생들에게 시간과 공간, 네트워크를 제공해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권혁빈님은 대학 재학중에도 '슈퍼팝업'이라는 인스턴스 메신저 프로그램을 개발해 창업 지원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권혁빈님은 대학 졸업후 창업을 선택합니다. 

 

하이텔 게임제작동호회에 올라왔던 대학시절 글(출처, 김성완님 페이스북)

 

첫번째 창업은 포씨소프트입니다. PC 기반의 교육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는데, '액티브튜터'라는 프로그램은 UC버클리에서도 수업에 사용되는 등 주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주주 및 투자자와의 이견으로 인해 공동창업자였던 배정훈님에게 경영권을 넘기고 퇴사합니다.

퇴사한 이후 권혁빈님은 두번째로 창업합니다. 이 회사가 지금의 스마일게이트가 됩니다. 권혁빈님은 크로스파이어(CrossFire)라는 이름의 FPS (1인칭 슈팅)게임을 개발합니다. 국내에서는 흥행하지 못했지만, 중국에 진출하여 중국인들의 취향에 맞게 적극적으로 요구사항을 반영하면서 안정적으로 게임을 발전시켜갑니다. 결국 중국 게이머의 마음을 사로 잡은 크로스파이어는 마치 우리나라에서의 스타크래프트처럼 사실상 명절에 모이면 젊은 사람들이 PC방에서 함께하는 국민게임으로 등극합니다. 중국내 크로스파이어 배급을 담당했던 텐센트도 함께 급성장합니다.

권혁빈님은 크로스파이어로 큰 돈을 벌었지만, 계속 게임에 투자를 진행했습니다. 이정도 되면 보통 상장을 통해 투자금을 확보하지만, 대신 주주들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꾸준한 게임 개발은 힘들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권혁빈님은 지분을 섞지않고 개발팀이 꾸준히 개발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줍니다.  이는 7년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완성된 '로스트아크'의 성공스토리에서 그의 경영 스타일이 드러납니다.

권혁빈님은 자신의 성장을 도와준 인연들에 대해서도 꾸준히 자신의 방식으로 보답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러 프로그램중 스마일게이트 희망스튜디오 프로그램과 퓨처랩 프로그램을 좋아합니다.

희망스튜디오는 다양한 봉사, 기부 프로그램을 운영중인데요. 교육, 예술, 기술 분야의 프로그램을 통해 소외된 아동 및 청소년의 잠재력을 키우고, 게임 커뮤니티 내에서 기쁨과 희망을 나누는 문화를 조성하는 조직입니다. 현재 시설의 자립청소년부터 장애인, 취약계층 청소년, 어르신을 돕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대부분의 기부나 사회 재단들은 조직 운영비가 어느 정도 들어가게 되는데, 희망스튜디오는 조직 운영비를 전부 스마일게이트에서 담당하고 기부금은 100% 프로그램 운영에만 사용된다는 점이죠.

퓨처랩은 권혁빈님 스타일의 삼성 소프트웨어 멤버십이라 볼 수 있는데요. 여러 창의 창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창의 창작 프로그램도 개발하고, 아이들이 재미있게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을 스마일게이트 캠퍼스 지하 1층에 운영하고 있습니다. (혹시 참여하시는 분들은 퓨처랩에서 우물을 찾아보세요.. :) 아직 있을지 모르겠네요.)

아! 창업의 선배로써 권혁빈님은 오랜지플래닛을 만들어 운영중입니다. 오랜지플래닛은 창업을 희망하는 청년들에게 공간과 자금을 지원해주는 인큐베이터이자 엑셀러레이터인 조직입니다.

산업의 발전과 사회의 공헌에 대해 정부는 2020년 게임업계 인물로는 최초로 보관문화훈장을 수여합니다.

 

“시장상황에 대한 직관보다 훌륭한 스승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책상 위에서 자료나 책으로 공부하기보다 직접 몸으로 부딪치면서 배우고 느끼는 시장분석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이끌어 왔습니다.” 

 

 

과학기술대학 86학번인 서영진 대표는  92년도에 수치해석을 전공하던 중 리눅스를 처음 접합니다. 그는 “소스코드를 공개한 리눅스는 전세계 프로그래머들이 공동으로 기술을 개발해 왔기 때문에 MS의 윈도 운영체제보다 더 안정적이고 성능이 우수하다”고 믿는 1세대 골수 리눅서이기도 합니다.

서영진님은 1997년 미지리서치를 설립한 후, 한글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미지 리눅스 배포판을 개발하였습니다. 99년에 출시된 미지리눅스 1.0은 정식 배포판만 9만장, 무료 배포판은 70만장 이상 나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리눅스에서의 한글 사용이 단순히 한글만 입출력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겠지요. 서영진 님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한글과컴퓨터사에서 유닉스용 하안글인 한글X를 개발했고, 리눅스용 한글 입력기인 hanim을 개발하기도 한 한글 처리의 대가이기도 합니다. 또한 스타오피스의 한글화 작업에도 적극 참여했습니다.

X윈도에서 실행된 아래아 한글. 출처: https://kldp.org/node/128225

이후 미지 리서치는 리눅스 기반의 모바일 단말기 개발에도 공을 들였는데요. 임베디드 리눅스 운영체제인 리누엣을 개발하였습니다.  리누엣에는 웹브라우저, 이메일 클라이언트, PIMS, MP3 Player, 라디오 수신기 등의 애플리케이션을 갖추고 있었고, SyncML을 이용하여 MS 아웃룩과도 동기화가 가능했던 모바일 단말 운영체제입니다. 이 제품은 일본 RCT 등을 통해 해외에도 판매되었습니다. 기술력을 갖춘 미지 리눅스는 리눅스 폰 표준화 포럼의 창립 멤버이기도 했고, 임베디드 리눅스 분야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뽐내었습니다.

이후 미지리서치는 미국 임베디드 소프트웨어 업체인 윈드리버에 인수되고, 서영진 님은 윈드리버 대표로 활동했습니다.

서영진 님은 2010년 공개 소프트웨어 개발자대회에서 오픈소스 기반의 사업을 성공시킨 공을 인정받아 정보통신진흥원장 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침체에 빠져 있는 리눅스 업계에 희망을 주는 모델이 되고 싶다”

 

 

 

이번에 소개할 분은 Jake Song으로 알려져 있는 개발자, 송재경님입니다. 대부분 리니지의 아버지로 송재경님을 기억하지만, 저는 hanterm 개발자로 기억합니다.

hanterm은 X윈도(POSIX 시스템의 GUI 환경)에서 한국어 입출력을 지원하는 터미널 에뮬레이터입니다.  KAIST 재학 시절(1991년) 송재경님은 리눅스/유닉스용 VT100/200 에뮬레이터를 개발합니다. 당시에는 UTF-8이 표준으로 정착되기 전이었습니다. 한글 표준 전산화 작업은 진행되었지만, 리눅스/유닉스 환경에서 한글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오픈소스이긴 했지만, 다국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특히 한글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그 나라의 몫이었습니다.  일반 사용자들에게 리눅스는 만만치 않았는데,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것은 또하나의 큰 장벽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한텀입니다. 물론 한텀을 리눅스에 설치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이후 한글 기반의 리눅스 배포판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여기에 한텀이 기본 탑재되면서 리눅스에서 한글의 사용이 쉬워졌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UTF-8이 기본 지원되는 최신 터미널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한텀은 기본 터미널 프로그램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우리의 기억속에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송재경님은 우리나라 게임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KAIST 박사 과정을 중퇴한 이후 건국대 학생이던 김성배님과 함께 개발한 <쥬라기 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 텍스트 머드게임이 됩니다.(예전에 소개했던 단군의 땅보다 일주일 먼저 천리안을 통해 서비스됩니다.) 그 뒤에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김정주 님과 함께 넥슨을 창업하고 바람의 나라를 개발합니다. 하지만 1995년말 김정주님과의 불화로 지분을 모두 반납하고(!!!) 넥슨을 퇴사합니다. 이후 아이네트에 입사하여 리니지를 개발하는데, 아이네트가 IMF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엔씨소프트로 이직, 리니지를 계속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 IMF는 경제적 위기였지만, 인터넷과 PC방이 큰 인기를 끌며 보급됩니다. 그 붐을 타고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2002년 말 송재경님은 김택진님과의 불화로 다시 엔씨소프트를 퇴사합니다. 이때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모두 처분했는데, 대략 45억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돈이지만, 송재경님의 역할에 비해서는 적은 엑싯이었다라는 평이 많더군요. 이후 자신의 회사인 XL 게임즈를 세우고, 아키에이지를 개발했습니다. 아쉽지만 아키에이지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송재경님의 이야기가  최근 다시 언론에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홀로 리니지와 비슷한 게임을 바이브코딩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게임은 사람과 AI를 모두 전체 게임월드의 플레이어로 바라보는 독특한 MMO 게임입니다. 보통 NPC는 정해진 역할만 담당하고, 사람이  제어하는 캐릭터와는 명확히 분리되죠.  아래 링크를 통해 한번 브라우저에서 체험해 보시길..

송재경님은 전길남 박사님의 제자이기도 한데요. 석사학위 논문은 "첨가 메카니즘이 있는 규칙에 근거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 시스템(Rule-based presentation design with augmentation)" 입니다. 

 

 

 

 

 

OpenMMO

 

openmmo.to.nexus

 

"게임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게임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의미가 없다."
"나는 경영 체질이 아니다. 관리 업무보다는 차라리 코딩이 훨씬 편하고 재미있다."
"리니지의 성공은 7할이 운이다. IMF 시절, PC방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잘 맞아떨어졌다."
"(아키에이지는) 내가 개발자로서 정말 만들고 싶었던, 자유도가 극도로 높은 게임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냥 게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오래 했을 뿐이다."
“주인의식은 (오너인) 제가 가질게요” - 신입사원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송재경님의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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