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아이폰 새 모델이 발표되었습니다. 아이폰에서 어떤 기능을 많이 사용하시나요? 저는 MP3로 대변되는 디지털 음악 재생 기능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디지털 휴대 기기로 음악을 듣게 된 것은 그렇게 역사가 길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지요.

때는 1990년대 후반, 음악을 즐기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마이마이(삼성), 아하(금성), 워크맨(소니)으로 대변되는 카세트테이프 시장과 CD 플레이어가 대세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워크맨은 엄청났죠. 그런데 당시 PC통신에서 MP3 파일이 막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PC에 앉아서 MP3 파일을 내려받아서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였던 황정하님은 여기에서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모터나 헤드 같은 기계 부품을 다 없애고, 반도체 메모리에 디지털 파일을 넣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기기를 만들면 어떨까?"

지금도 그렇지만(ㅠㅠ) 당시 IT 기업들은 플래시 메모리가 너무 비싸서 상업성이 없다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는 97년 세계 최초로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휴대용 음향재생 장치에 대한 원천 특허를 출원했고, 1998년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인 MPMan F10을 출시했습니다. 아날로그 음향의 시대는 가고, 디지털 음향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술은 최고였지만, 시대가 황사장을 돕지는 않았습니다. 1997년 대한민국을 뒤덮은 IMF 외환위기와 자금난은 신생 벤처기업이 헤쳐나가기에는 힘든 파고였습니다. 결국 디지털캐스트는 자금 확보를 위해 특허권과 영업권을 공동 개발사였던 새한 정보 시스템으로 넘겼고, 회사는 미국 반도체 기업으로 인수됩니다. 새한도 경영악화로 MP3 사업을 매각하면서 MP3 플레이어 원천 특허는 미국 벤처 기업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21세기가 되면서 스티브잡스는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전세계 음악시장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삼성, LG,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도 일제히 MP3 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들죠. 바로 이때 잊혀져 가던 황정하 사장의 원천 특허가 무서운 위력을 발휘합니다. 미국 특허층은 다음 판결을 내놓습니다.

"애플 아이팟을 비롯하여 반도체 메모리로 음악을 재생하는 전세계 모든 기기는 1997년 대한민국의 황정하가 출원한 원천 특허의 범위에 있다."

2008년 아이리버와 국내 자본은 합심하여 해외로 유출되었던 황정하 사장의 원천 특허를 다시 사들여 특허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마저 무릎을 꿇고 특허 사용료를 내야했을 만큼 황정하 사장이 출원한 특허의 힘은 막강했습니다. 한때 아이리버는 전세계 최고의 휴대용 음향기기였고, 해외에서 한국으로 출장온 사람들은 아이리버를 구매하기 바빴던 적도 있습니다. 

황정하 사장은 IMF라는 시대적 비극 속에서 큰 부를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의 First Mover 유산을 남기며, 오늘날 우리가 아이폰과 갤럭시로 음악을 듣는 모든 기술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혹시 최근 SNS에서 Omarchy Linux에 대한 글을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Omarchy는 기본적으로 아키리눅스(Arch Linux)를 기반으로, 개발자들을 위해 특화된 리눅스 배포판입니다. 저는 아직 사용해 보지 않았는데요. 음.. GeekNews를 살펴보면 DHH의 개인 dotfiles를 구성한 개발자 리눅스 환경처럼 느껴집니다.

앗. 여기서 벌써 DHH라는 이름이 나왔네요. DHH.. 본명은 데비이스 하이네 마이어 한손(David Heinemeier Hansson)입니다. 덴마크 출신이고요. 코펜하겐 경영대학에서 전산학과 경영학을 전송한 뒤 2005년 미국으로 이민갑니다.

한손은 어린 시절 컴퓨터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이웃집에 있는 코모도어 64에서 게임을 하면서 생긴 호기심을.. 그의 아버지가 Amstrad 464 PC를 장만하면서 폭발하죠. 하지만 그의 집 형편은 넉넉하진 않았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컴퓨터를 샀느냐. 아버지가 TV와 스테레오를 가지고 당근하셔서 PC 를 장만했답니다.(맞교환)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네요. (울 아버지도 넉넉치 않은 살림에 제게 금성에서 나온 패미콤 150을 사주셨는데...)

DHH는 PHP 개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초기 웹사이트를 구축했는데, 2002년경 운명의 프로그래밍 언어, 루비를 만납니다. 그는 루비의 매력에 금방 빠져들었죠. 그는 37시그널즈에서 개발한 프로젝트 관리 서비스였던 베이스캠프를 개발했는데, 이 서비스에 사용된 코드를 정리하여 루비용 웹 애플리케이션 프레임워크를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프레임워크의 이름이 레일즈. 루비 언어와 찰떡궁합이라 RoR, 루비 온 레일즈로 불리웁니다. RoR의 최초 안정 버전은 2005년 12월 13일 출시되었습니다. (앗 그러고 보니 당근의 주요 백엔드 기술 스택이 RoR이라지요. 당근으로 자란 개발자 당근을 만들??) RoR은 지금은 사라진 스프링노트(제기억이 맞다면...) 트위터, 쇼피파이 등에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한손으로 만들어 이정도인데, 두손으로 만들었으면....)

정작 Omarchy 배포판을 이야기하지 않았네요. 이 배포판은 2025년 6월 26일에 출시되었고, 전체 디스크 암호화, 미리 구성된 개발자 도구, TUI기반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배포판입니다. omarchy.org에서 MIT 라이선스로 배포됩니다. 호불호가 많이 있어요. 특히 배포판으로 볼 수 있는 것이냐? 과하다? 등의 논쟁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DHH의 직설적인 화법은 분쟁의 도화선이..) 또한 DHH는 이민자 혐오발언, 인종차별 시각과 극우적 발언으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참고로 X의 파차님께서도 "차별주의자의 닷파일 프로젝트를 통해서 기존 오픈소스 후원 프로그램에 비해 엄청나게 많은 돈이 흐르는게 별로 좋지 않은 모양새"라고 지적해 주셨습니다.

DHH는 20년 넘게 RoR을 직접 작성해온 찐 개발자이지만, 최근에는 AI 에이전트에게 코드 작성을 맡기고 자신은 방향성을 정립하고 생성 결과물을 판단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수의 새로운 작업방식....참고할만 합니다.

 

웬만한 조직에 MSA는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된 조직이야말로 혁신을 일으킨다. 프로젝트에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소통에 대한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급증한다.

 

Ruby는 고급 언어이다. 언어 중에서 코코 샤넬이다. 모든 사람들이 감당할 수는 없다.

 

프로그래밍을 제대로 배우는데 20년이 넘게 걸렸다.

 

돈이 있으면 즐겁다. 하지만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냥 그렇게 오랫동안 재미있거나 깊지는 않다.

 

돈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만큼 현실감을 빨리 느끼게 해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30억 달러의 매출로도 수익낼 방법을 찾지 못했다면 도대체 언제쯤 수익을 내는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할 때는 그 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중요합니다. 일에 너무 집착하게 되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원망하게 될 거예요. 필요하다면 일을 놓아주고 떠날 줄 알아야 합니다.

 

아주 작은 실제적인 것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작동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겁니다.

 

 

 

 

 

 

자비로운 종신 독재자(Benevolent Dictator for Life).. IT업계에서  이런 명칭을 사용할 수 있는 몇몇 분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하는 패트릭 볼커딩도 그중 한 분입니다. 그는 1993년 리눅스 슬랙웨어 배포판을 만들고, 지금까지 계속 개발을 이끌며, 종속성 문제 해결 및 슬랙웨어를 유닉스와 비슷하계 유지 보수하고 있습니다. 살아있는 역사의 증인이죠... 슬랙웨어...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리눅스 배포판이기도 합니다. 

패트릭 볼커딩은 66년생으로 버지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미 해군 소속 치과의사였지만 어린 시절을 노스 다코다에서 보냈습니다. 7살이던 73년도에 노스다코다 주립대 컴퓨터학과를 견학갔다가 메인프레임을 만나게 되죠. 컴퓨터에 대한 관심은 폭발했지만, 가정형편때문에 컴퓨터를 장만하지 못했던 패트릭은 열심히 전자공학을 공부합니다. 릴레이 회로를 직접 만들었답니다. 그러다가 애플2, TRS-80 같은 개인용 컴퓨터가 출시되었고, 컴퓨터 가게를 하도 자주 가서 단골이 된 패트릭은 BASIC을 독학한 후 가게에서 쓸만한 간단한 데모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그 덕분에 가게에 떳떳하게 무제한 입장 가능!! 

그의 첫 컴퓨터는 애플2+였다고 합니다. 이후 90년까지 애플컴퓨터만 사용했는데, 92년 운명적으로 리눅스를 만납니다. 볼커딩은 85년 보스턴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 학위 취득후 무어헤드 주립대(현 미네소타 주립대)에서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볼커딩은 인공지능 수업을 듣고 있었는데, LISP으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볼커딩은 프로젝트에 사용할 저렴한 LISP 인터프리터를 찾다가 초기 리눅스 배포판중 하나인 SLS를 다운로드 받아 사용하게 됩니다.

하지만 SLS는 잘못된 파일권한, 불안정한 네트워크 구성으로 크래시가 자주 발생했는데, 볼커딩은 소스코드를 재 컴파일하면서 안정성을 높여가는 작업을 진행하죠.  교수님이 "새로운 컴퓨터에 설치 디스크를 수정해서 이런 수정 사항들이 바로 적용되도록 할 방법이 있을까요?"라고 던진 질문이 슬랙웨어의 시작이었습니다.(교수님 왜 그러셨어요? 차라리 대학원 진학하라고 하시지. 아 이미 대학원생이구나. )

1993년 SLS의 품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직접 리눅스 배포판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초기에는 소스코드에서 소프트웨어를 수동으로 패치킹하는 방식의 사용자 정의 설치 스크립트를 작성했고, 유즈넷 comp.os.linux 그룹의 피드백을 받아 시스템을 개선해 나갑니다. 1.0 이  AT&T에 처음 배포된 후 높은 인기를 누리며 초기 사용자를 끌어 모았습니다.

그는 지금도 슬랙웨어를 유지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슬랙웨어는 15.1이 최신 버전입니다. :)

무언가를 좋아하고, 사랑하고, 참여하고, 공유하는 과정.. 리눅스의 철학과 딱 맞는 것 같아서 소개해 보았습니다. 

 

1992년, 핀란드에서 누군가가 UNIX 클론을 만들려는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처음 들었습니다. 당시 저는 16MHz 386/sx에서 OS/2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괜찮은 운영체제였지만 제가 정말로 원했던 건 UNIX 계열 운영체제였습니다.
사용자의 의도를 미리 짐작하려 들수록 오히려 장벽이 생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대한 단순하게 유지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저는 당장 눈앞의 목표에 집중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 목표들이 달성되면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집니다. 슬랙웨어 개발은 ​​계획적인 설계라기보다는 진화의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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