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소개할 분은 Jake Song으로 알려져 있는 개발자, 송재경님입니다. 대부분 리니지의 아버지로 송재경님을 기억하지만, 저는 hanterm 개발자로 기억합니다.

hanterm은 X윈도(POSIX 시스템의 GUI 환경)에서 한국어 입출력을 지원하는 터미널 에뮬레이터입니다.  KAIST 재학 시절(1991년) 송재경님은 리눅스/유닉스용 VT100/200 에뮬레이터를 개발합니다. 당시에는 UTF-8이 표준으로 정착되기 전이었습니다. 한글 표준 전산화 작업은 진행되었지만, 리눅스/유닉스 환경에서 한글을 사용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오픈소스이긴 했지만, 다국어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특히 한글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그 나라의 몫이었습니다.  일반 사용자들에게 리눅스는 만만치 않았는데,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것은 또하나의 큰 장벽이었죠. 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 한텀입니다. 물론 한텀을 리눅스에 설치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이후 한글 기반의 리눅스 배포판들이 나오기 시작하고, 여기에 한텀이 기본 탑재되면서 리눅스에서 한글의 사용이 쉬워졌습니다. 물론 그 뒤에는 UTF-8이 기본 지원되는 최신 터미널 환경이 보편화되면서 한텀은 기본 터미널 프로그램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우리의 기억속에 추억으로 남게 됩니다. 

송재경님은 우리나라 게임계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KAIST 박사 과정을 중퇴한 이후 건국대 학생이던 김성배님과 함께 개발한 <쥬라기 공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상용 텍스트 머드게임이 됩니다.(예전에 소개했던 단군의 땅보다 일주일 먼저 천리안을 통해 서비스됩니다.) 그 뒤에는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김정주 님과 함께 넥슨을 창업하고 바람의 나라를 개발합니다. 하지만 1995년말 김정주님과의 불화로 지분을 모두 반납하고(!!!) 넥슨을 퇴사합니다. 이후 아이네트에 입사하여 리니지를 개발하는데, 아이네트가 IMF로 경영상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엔씨소프트로 이직, 리니지를 계속 만들어 갑니다. 하지만 인생지사 새옹지마, IMF는 경제적 위기였지만, 인터넷과 PC방이 큰 인기를 끌며 보급됩니다. 그 붐을 타고 리니지(와 스타크래프트)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2002년 말 송재경님은 김택진님과의 불화로 다시 엔씨소프트를 퇴사합니다. 이때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모두 처분했는데, 대략 45억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어마어마한 돈이지만, 송재경님의 역할에 비해서는 적은 엑싯이었다라는 평이 많더군요. 이후 자신의 회사인 XL 게임즈를 세우고, 아키에이지를 개발했습니다. 아쉽지만 아키에이지는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습니다.

송재경님의 이야기가  최근 다시 언론에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홀로 리니지와 비슷한 게임을 바이브코딩 방식으로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죠. 이 게임은 사람과 AI를 모두 전체 게임월드의 플레이어로 바라보는 독특한 MMO 게임입니다. 보통 NPC는 정해진 역할만 담당하고, 사람이  제어하는 캐릭터와는 명확히 분리되죠.  아래 링크를 통해 한번 브라우저에서 체험해 보시길..

송재경님은 전길남 박사님의 제자이기도 한데요. 석사학위 논문은 "첨가 메카니즘이 있는 규칙에 근거한 사용자 인터페이스 설계 시스템(Rule-based presentation design with augmentation)" 입니다. 

 

 

 

 

 

OpenMMO

 

openmmo.to.nexus

 

"게임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한다. 재미없는 게임은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의미가 없다."
"나는 경영 체질이 아니다. 관리 업무보다는 차라리 코딩이 훨씬 편하고 재미있다."
"리니지의 성공은 7할이 운이다. IMF 시절, PC방이라는 시대적 흐름과 잘 맞아떨어졌다."
"(아키에이지는) 내가 개발자로서 정말 만들고 싶었던, 자유도가 극도로 높은 게임에 대한 도전이었다."
"나는 천재가 아니다. 그냥 게임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오래 했을 뿐이다."
“주인의식은 (오너인) 제가 가질게요” - 신입사원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겠습니다”라고 인사를 하자 송재경님의 답변

 

1990년대 초, 대한민국 문서 작성 소프트웨어 시장은 한글과컴퓨터사의 '아래아한글'이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그 거대한 장벽 앞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민 대학생들이 있었습니다.1992년 '21세기'라는 독자적인 워드프로세서를 개발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이들은 비록 시장 점유율에서 한글을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이 도전을 통해 '이스트소프트'가 탄생하게 됩니다. 한양대생들로 이루어진 개발팀의 리더였던 사람은 이스트소프트를 이끌고 있는 김장중 님입니다.

92년에 발표된 21세기 워드프로세스는 비록 도스 환경에서 동작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아래아한글보다 먼저 벡터 글꼴을 지원하였습니다. 그 전 워드들은 비트맵 글꼴을 지원하였기 때문에, 가변 글꼴 크기, 즉 글자 크기를 키우면 계단이 나타났죠. 21세기 워드는 유려한 벡터 방식으로 글꼴이 렌더링되었습니다.

비트맵 글꼴은 이런 느낌입니다. 커지면 글자를 이루는 점 하나의 크기도 커졌습니다.

기능은 뛰어났지만 기존 워드 시장을 제패한 아래아한글의 벽은 견고했고, 시장의 반응도 높았지만 상업적 성공을 이끌지 못하고, 결국 팀은 소스코드와 개발 기법을 담은 서적을 발표하고 윈도우 버전의 개발도 중단됩니다. 사실 한글과컴퓨터사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도스 기반의 21세기 워드의 품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는데, 92년 7월 27일 아래아한글 2.0이 출시됩니다. 아래아한글 2.0에서는 21세기 워드와 달리 그림도 추가할 수 있었고, 벡터 글꼴도 지원되었습니다. 1993년 9월 이스트소프트팀은 법인 이스트소프트를 설립한 후 21세기 워드는 27,500원의 가격에 출시합니다. 당시 아래아한글 전문가용이 20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이었습니다. 21세기는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했지만, 홍보부족 및 아래아 한글에 밀려 실패하고 맙니다. 또한 당시 김장중님은 군 복무중이어서, 결국 다른 직원들은 모두 회사를 그만 둡니다. 21세기 워드의 개발진 중 한 명인 전준희님은 학교로 돌아가서 2006년 구글 본사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됩니다. 

 

초기 개발자였던 김장중, 전준희, 최봉우, 박우진의 성씨로 이뤄진 각인이 보인다.

하지만 김장중님은 홀로 남아서 이스트소프트를 꾸려 나갑니다. 군복무 이후에도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습니다.  압축 프로그램인 알집, 보안 프로그램인 알약 등 알 시리즈를 만들었고, 인터넷 포털인 줌 인터넷, 카발 온라인 게임 등을 만들었습니다. 상업적 성공을 바탕으로 코스닥 상장 소프트웨어 업체를 일궈낸 김장중님. 21세기워드의 실패때문인지 그 이후부터는 기능보다는 마케팅에 더 신경을 많이 쓴다는 세간의 평가가 있었지만, 저는 소프트웨어 기업을 일궈낸 대표로써 충분히 그런 부분도 신경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컴퓨터를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적이 없어요. 컴퓨터를 잘하는 사람에게 어떤 것을 먼저 공부해야 하는지 물어 보고 책을 사서 혼자 공부했죠. 생각보다 어렵지 않더라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절실하게 배우고 싶어서 힘든 줄 모르고 공부한 것 같아요.
“우리는 오랜 역사와 다양한 서비스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에게 게임의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를 위해 탄탄한 개발력과 서비스 노하우를 기반으로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페이스북이 아이디어가 좋아서 성공했다고 진단하는 이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페이스북은 시스템이 아주 탄탄하다. 기술적인 부분에서 상당히 뛰어나다는 것이다. 이런 것 없이 여러 사람들이 뛰어드니 나도 뛰어든다고 하면 성공할 확률은 상당히 낮다.”
“93년 창업 당시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성공 사례가 많이 거론됐다. 마이크로소프트의 DOS를 보니 저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소프트웨어에 대한 인지도도 높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앞으로 소프트웨어의 시대가 올 것 같았다. 당시에 마이크로소프트는 작은 회사였다. 오히려 IBM과 애플간에 개방이냐 패쇄냐의 경쟁이 있었다.”
“(인재상으로 의리를 강조하는 배경) 사업을 해보니 성공하려면 혼자 잘나서 되는 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다.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선배 혹은 회사의 시스템 지원이 있어야 했다. 어느 분야에서 밥값을 하려면 한 3년은 누군가 돌봐줘야 한다. 회사는 육성을 하는 것이다. 회사 혹은 선배들이 시간을 쏟아 뭔가를 지원해야 나라는 존재가 탄생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전 그것을 의리라고 본다. 신입 사원들이 들어와서 생활하는 것을 보면 얼마 있다가 도망갈 것 같은 사람이 보인다. 이는 태도에서도 묻어난다.” (2011/05/16, 블로터 인터뷰에서)

 

 

 

 

21세기 워드프로세서 소스공개(S/W포함) | 김장중 - 교보문고

21세기 워드프로세서 소스공개(S/W포함) |

product.kyobobook.co.kr

 

 

얼마전 아이폰 새 모델이 발표되었습니다. 아이폰에서 어떤 기능을 많이 사용하시나요? 저는 MP3로 대변되는 디지털 음악 재생 기능을 많이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디지털 휴대 기기로 음악을 듣게 된 것은 그렇게 역사가 길지 않습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것이 우리나라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지요.

때는 1990년대 후반, 음악을 즐기는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마이마이(삼성), 아하(금성), 워크맨(소니)으로 대변되는 카세트테이프 시장과 CD 플레이어가 대세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워크맨은 엄청났죠. 그런데 당시 PC통신에서 MP3 파일이 막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PC에 앉아서 MP3 파일을 내려받아서 스피커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마이크로소프트 엔지니어였던 황정하님은 여기에서 미래를 바라보았습니다.

"모터나 헤드 같은 기계 부품을 다 없애고, 반도체 메모리에 디지털 파일을 넣어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기기를 만들면 어떨까?"

지금도 그렇지만(ㅠㅠ) 당시 IT 기업들은 플래시 메모리가 너무 비싸서 상업성이 없다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는 97년 세계 최초로 플래시 메모리 기반의 휴대용 음향재생 장치에 대한 원천 특허를 출원했고, 1998년 세계 최초의 MP3 플레이어인 MPMan F10을 출시했습니다. 아날로그 음향의 시대는 가고, 디지털 음향의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기술은 최고였지만, 시대가 황사장을 돕지는 않았습니다. 1997년 대한민국을 뒤덮은 IMF 외환위기와 자금난은 신생 벤처기업이 헤쳐나가기에는 힘든 파고였습니다. 결국 디지털캐스트는 자금 확보를 위해 특허권과 영업권을 공동 개발사였던 새한 정보 시스템으로 넘겼고, 회사는 미국 반도체 기업으로 인수됩니다. 새한도 경영악화로 MP3 사업을 매각하면서 MP3 플레이어 원천 특허는 미국 벤처 기업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21세기가 되면서 스티브잡스는 아이팟을 출시하면서 전세계 음악시장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삼성, LG, 소니 등 글로벌 기업들도 일제히 MP3 플레이어 시장에 뛰어들죠. 바로 이때 잊혀져 가던 황정하 사장의 원천 특허가 무서운 위력을 발휘합니다. 미국 특허층은 다음 판결을 내놓습니다.

"애플 아이팟을 비롯하여 반도체 메모리로 음악을 재생하는 전세계 모든 기기는 1997년 대한민국의 황정하가 출원한 원천 특허의 범위에 있다."

2008년 아이리버와 국내 자본은 합심하여 해외로 유출되었던 황정하 사장의 원천 특허를 다시 사들여 특허 독립을 이루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마저 무릎을 꿇고 특허 사용료를 내야했을 만큼 황정하 사장이 출원한 특허의 힘은 막강했습니다. 한때 아이리버는 전세계 최고의 휴대용 음향기기였고, 해외에서 한국으로 출장온 사람들은 아이리버를 구매하기 바빴던 적도 있습니다. 

황정하 사장은 IMF라는 시대적 비극 속에서 큰 부를 거머쥐지는 못했지만, 대한민국의 First Mover 유산을 남기며, 오늘날 우리가 아이폰과 갤럭시로 음악을 듣는 모든 기술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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