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때로는 '하면 된다'가 아니라 '되면 한다'가 더 큰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피아니스트를 꿈꾸었던 한 소녀는 음악 명문인 줄리어드 음대 진학을 목표로 열심히 피아노를 연습합니다. 여러 차례 오디션과 콩쿨을 거치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은 세계 1등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다는 냉혹한 현실을 깨닫습니다. 그리고는 기왕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있는 일을 하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동안 연습해 오던 피아노를 덮고, 자신이 가장 잘하는 수학과 과학에 매진합니다. 1986년 소녀는 마침내 전세계 수재들이 모이는 MIT에 입학합니다. 이제 전공을 선택해야 하는데, 선배와 동기들이 '전기공학은 너무 어렵고 과제가 많아 미친짓'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가장 어려운 문제를 풀었을 때 가장 큰 성취감을 얻으니까.. 가장 어려운 전공이라면 내가 그걸 해야지.'라며 전기공학을 선택합니다. 그 소녀는 현재 AMD를 이끌고 있는 반도체 제국의 여제, 리사 수입니다.
MIT에서 웨이퍼 제작 관련 논문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리사 수는 IBM 반도체 R&D 이사로써 구리 배선 기술을 상용화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합니다. 또한 소니, 도시바와 협력하여 게이밍용 차세대 프로세스 개발을 지휘합니다. 이 성과로 셀-브로드밴드 엔진이 개발될 수 있었고, 이를 이용하여 플레이스테이션 3의 핵심 프로세서가 만들어 집니다.
2012년 그녀는 인텔에 밀리고 있던 AMD에 합류합니다. 리사 수는 2014년 CEO 에 취임한 이후,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선언하고, 모든 사내 리소스를 차세대 아키텍처인 ZEN 개발에 집중시킵니다. 당시 업계에서는 조만간 AMD가 파산할 것이라 예측했었죠. 하지만 리사 수는 취임 직후 자신의 개인 재산을 털어 AMD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입니다. CPU 시장에서 인텔에 밀리고 있던 AMD는 2017년 라이젠 CPU와 에픽(EPYC) 서버 칩을 출시하면서 점차 기술적 우위를 회복하기 시작했고, 콘솔 게임기의 CPU를 독점하게 되면서 큰 성장을 이루게 됩니다. 리사 수가 CEO로 합류할 당시 주가는 3달러였는데, 현재는 400달러가 넘는 회사로 부활시켰습니다.
AMD를 부활시킨 리사수는 대만 타이난 출신으로, 엔비디아의 젠슨 황과 5촌관계입니다. 리사수의 외할아버지와 젠슨 황의 어머니가 남매지간이라고 하네요.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향해 달려가십시오. (Run toward the hardest problems.)"
"가장 큰 위험은 어떠한 위험도 감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The biggest risk is not taking any risk.)
"혁신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입니다. (Innovation is not a luxury; it's a necessity.)"
"저는 MIT에서 많은 엔지니어들과 함께 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왜 MIT 박사들이 하버드 MBA 출신들을 위해 일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이제 직접 결정하는 사람이 되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우리는 결코 싼값에 파는 '저가형 대안(Cheap Alternative)'이 아니다. 우리는 시장에서 가장 뛰어난(Best) 제품을 만들 것이다
"우리는 단지 성공적인 반도체 회사가 되는 것을 넘어, 세상을 바꾸는 유산을 남기고 싶습니다." (We want to leave a legacy of changing the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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